역사의 역사(유시민, 2018) 리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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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명확이 나와 있듯이 이 책의 이름은 '역사' 가 아닌 '역사의 역사' 이다. 역사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가 있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세계사 지식이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아마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책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나와 같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 위태롭게 걸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학문으로써의 '역사' 지식을 전해주는 데에는 빈약하지만, 앞으로 '역사' 서적을 들춰보는데 있어 그 책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끝으로,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해 둔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미 느꼈겠지만, 이 책은 이름난 왕궁과 유적과 절경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잠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인증 사진을 찍는 패키지여행과 비슷하다. 패키지여행은 안전하고 편리하지만 자유여행과 달리 소소한 즐거움이나 깊은 의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하지만 패키지 여행은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을 들여 중요하고 이름난 공간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 책도 그런 점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P.318
같은 교과과정의 같은 과목이라도 그에 대한 참고서가 서로 다른 구성을 가지고 있듯,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니, 기준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에 대한 서술 방식은 정말 천차만별일 것이다. '역사의 역사' 는 이러한 점에 특히 무게를 두어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제대로 된 역사 서술이 등장할 때 부터 많은 역사가들이 끊임 없이 고민했던 점인데 저마다의 논리와 관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음을 거듭 절감했다.P.16
그렇다면 각자 다른 인물을 역사의 창시자로 지목한 키케로와 랑케 가운데 누가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흥미롭지만 의미 없는 질문이다. 그 누구도 역사를 창시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 또는 그보다 앞선 시기에 그리스 세계에 살았던 사람 중에 그들 못지 않게 훌륭한 역사서를 쓴 사람이 있었는데도 책이 전해지지 않아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헤로도토스만큼 아는 게 많은 이야기꾼이 있었지만 문자를 몰라서 책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업적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그들은 2,500년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끄는 역사책을 남겼다.P.46
지금까지 셀 수 없는 역사서가 발간되었고, 어떤 책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만, 다른 책들은 곧바로 잊혀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서로써의 가치를 떠나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동안 많이 읽히는 역사서는 정해져 있으며, 그들의 공통된 특징도 명확하다. 이렇게 학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책이 외면받는다던가, 이미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고 밝혀진 책이 여전히 고전으로써 읽혀지는지에 대하여 이 책은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사기" 와 같은 역사서는 2000년 넘는 세월을 살아남았다. 그와 달리 역사 연구서, 역사 이론서, 역사 비평서는 생명이 그렇게 길지 않다. 학문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전문 연구자들 외에는 그 존재를 잘 알아주지 않는다....역사학 연구서가 가치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서사의 힘을 지니지 못한 책은 어느 장르든 오래가지 못한다.P.219
길고 긴 인류 역사의 마지막, 현대를 대표하는 역사서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를 꼽았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역사는 서술방식을 떠나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짤막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인간이 자연선택의 역사를 종식하고 지적 설계의 역사를 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수렵채집인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정신은 모든 기회를 편 가르기에 활용하는 부족 본능을 극복하지 못했다. 우주를 탐사하고 유전자를 조작한다고 해서, 인간을 복제하고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P.314
시간의 장막을 넘어 미래를 엿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라리의 예측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사피엔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나는 그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런 점에서 '사피엔스' 는 훌륭한 역사책이다. 하라리는 독자에게 자신이 사피엔스의 역사를 보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역사는, 그래야 역사다운 역사 아니겠는가.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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