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이 쓰는 _ 전공 PPT 발표 잘하는 법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첫 학기를 보내면서 마주치는 고민 중 하나는 "PPT 발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고등학교까지 체계적인 발표를 할 일이 많지 않다. 더군다나 필자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바들바들 떠는 사람들에겐 지옥이 따로없다. 어쨌거나 대학교 4년동안 수많은 전공과목 발표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될만한 팁들을 적어보았다. 일단은 전공과목 PPT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적절한 발표자료를 활용하세요." 같은 소리는 다른 글에서도 많으므로 하지 않고, 순전히 4년동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가장 시간을 쏟아야 할 부분은 '무엇을 넣을 것인가/넣지 않을것인가'
'발표' 라고 하면 보통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이다. 발표해야 할 내용을 조사한 뒤에 그 내용들을 다음 5가지 항목으로 분류한다고 생각해보자.
- 글로 넣고, 말할 내용
- 글로 넣고, 말하지 않을 내용
- 글로 넣지않고, 말할 내용
- 글로 넣지않고, 말하지 않을 내용
- 그냥 버릴 내용
발표의 전체 구성이야 서론 - 본론 - 결론으로 꾸며야 하는 것 쯤은 누구나 알테고, 결국 중요한 것은 쓸데없는 내용은 빼고, 필요한 내용을 담는 것이다. PPT 발표에 익숙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공대수업에서는 이것만 잘하면 PPT 디자인이 구리든, 말을 좀 더듬든, 학생들에게는 몰라도 교수님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중요도는 당연히 위로 갈수록 중요하다. 1번, 글로 넣고 설명할 내용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해당된다. 2번, 글로 넣고 설명은 하지 않을 내용은 그보다는 덜 중요한 내용들이 해당된다. 혹은, 공식이나 구체적인 수치 위주의 내용이라 일일히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역시 여기에 해당된다. 3번, 글로 넣지 않고 설명만 하는 내용은 2번과는 비슷한 중요도를 가지나, 반대로 글보다는 그림과 같은 자료로 통한 전달이 쉬운 경우 역시 해당한다. 4번은 지금까지 내용에 비하여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해당한다.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질의응답으로 언급되었을 때에만 설명할 내용들이 해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버려지는 내용들인데, 아무거나 막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까진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해도 될 만한 내용들이 해당한다.
자료조사를 한 후에 발표 내용을 구성할 때, 위 5가지 분류를 염두한다면, 한결 쉽고 알찬 구성을 짤 수 있다.
슬라이드 당 글의 내용은 3~4줄
한 슬라이드에 들어갈 글자 수는 기본적으로 3~4줄 넣고 그림 하나 정도를 잡는다. 이렇게가 기본 구성이다. 흔히 교수님이 PPT자료로 수업하시는것에 익숙해져 자기도 모르게 비슷한 양의 내용으로 구성하는데, 수업을 위한 PPT 자료와 발표를 위한 PPT 자료는 전혀 별개이다. 애초에 교수님들은 강의노트를 미리 배포하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짤... "X같은 보노보노"라고 불리지만, 분명한 건 보노보노는 아무 잘못 없다.
당연히 글자수가 많아지면 듣는 사람은 지루해지고 힘들어지게 된다. 만약 같은 학계사람이나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배경지식을 공유하므로 글자 좀 많아져도 괜찮다. 하지만 기억하자, 교수님을 제외한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발표자 본인과 같이 아직 배우는 입장임을. 게다가 한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내용이 줄면, 전체 슬라이드 갯수가 늘고, 자주 슬라이드를 넘기게 된다. 그러면 발표에 동적인 느낌(속도감)을 주어 상대적으로 덜 지루하다.
아, 만약 내용을 아무리 압축해도 5줄이 넘어간다? 필자라면 내용을 6줄로 늘리고 슬라이드를 2장으로 쪼갠다.
중요한 내용은 강조색으로 표시한다
듣는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은 발표자를 위해서 더욱 필요하다. PPT 발표에서 대본 들고 힐끔힐끔 참고하는 것은 발표자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결국, PPT 슬라이드가 곧 대본의 역할을 해야 한다. 슬라이드를 넘기자 마자 강조된 단어들로 발표내용을 떠올리는 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물론 만약의 상황을 위해서 대본이 있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사용하지 않게 되어야 하는데, 해외 학회에서 박사급 연구원들도 대본 안보고 발표한다. 물론 그들도 만약을 위해 준비되어 있기는 하다.
대본없이 어떻게 내용을 외워서 발표하냐고? 강조색으로 표시된 단어만 보고 어떻게 모든 내용을 생각해내냐고? 그래서 2번 항목이 있는 것이다. 애초에 슬라이드 하나 당 3~4줄이기 때문에, 한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내용이 많지 않을 것이다.
PPT는 되도록이면 직접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건 선택사항. 필자는 팀플발표를 하게 된다면 발표+PPT제작은 같이 묶어서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발표자가 PPT자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습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연습이 생명이다
프레젠테이션 발표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도 한 달 전부터 발표연습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쪼렙인 우리는 연습없이 발표가 잘 될 리가 없다. 연습할 때 소리내서 하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반드시 소리내서 연습할 것 까진 없으나 속으로 하더라도 "~입니다(합니다)." 까지 어떻게든지 문장을 끝맺는 연습을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초보자들은 발표할 때 문장의 끝을 흐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PPT발표의 전반적인 구성에 관한 팁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여기까지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지만, 좀 더 나아가서 공대생PPT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언이 더 필요하다.
디자인을 못하겠다면 3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나는 공대생이고, 디자인 같은거 모른다'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터넷에서 PPT 템플릿을 다운받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그렇게 권하지 않는다. 그럴 정도의 디자인 감각을 가졌다면, 가져다 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PPT를 어떻게 만드냐고? 디자인을 모른다면 딱 3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PPT 디자인은 아래 3개가 전부인데, 그 외에는 몰라도 "PPT 이쁘게 만들었네요" 소리 듣는데에 지장 없다.
- 배치
- 폰트
- 색
배치
가장 먼저 나온 만큼, 셋 중에 가장 쉽다. 배치는 말 그대로 글과 그림의 배치를 말한다. 조금 더 넓게는 글자 크기, 들여쓰기 등을 포함한다. 제목이 본문보다 글씨가 커야하고, 글 4줄이 놓여있으면 그 간격들은 동일해야 한다는 거, 사진/그림 사이 간격은 좌우 간격을 일정하게 맞추는거 누구나 알지 않나? 여기는 가장 기본적인거라 쉽다. 굳이 첨언하자면 글자크기는 제목용/부제목용/본문용/주석용 크게 4가지의 글자 크기만으로 제한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관성 없는 글자크기는 미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좋지않다.
폰트
흰 색 배경에 글씨 배치만 잘 하고 괜찮은 폰트만 써도 아주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있다. 바로 애플이 그런 점을 잘 보여주는데 어떤 폰트를 써야 할 지 잘 모르겠다면, 네이버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나눔' 글꼴 시리즈를 쓰면 된다. '나눔고딕' 과 '나눔 스퀘어라운드' 2가지를 추천한다. 둘 모두 제목/본문 어디에 써도 괜찮고 무난한 글꼴이다.
PPT 초보에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폰트는 기본적으로 PPT가 아닌 컴퓨터에 저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발표장소에 있는 컴퓨터에 해당 폰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PPT를 완성한 뒤, 파일 - 옵션 - 저장 - "파일의 글꼴 포함" 을 체크표시해둬야 한다. 그러면 폰트가 PPT 내에 포함되어 어디서든 폰트가 깨지지 않는다.
색
앞의 2개는 매우 쉽지만, 솔직히 여기는 센스가 없으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하나의 PPT를 만들때, 색은 다음 몇 가지의 색을 쓴다.
- 배경색
- 글자색
- 강조색
- 보조색/테마색
배경색은 말 그대로 바탕이 되는 색이다. 보통 흰색 슬라이드를 많이들 쓰므로, 흰색으로 잡으면 중간 이상은 한다.
글자색은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다.' 할 때의 '검은 것'. 당연히 배경색과 비교되게 어두운 색을 쓰면 된다. 모르겠으면 검은색을 쓰면 되긴 하나, 필자는 남색도 많이 쓰는 편이다.
강조색은 강조를 하기 위한 색. 보통 빨간색으로 쓰는, 그런 용도를 상상하면 된다. 아마 여기까지 3개는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문제는 보조색/테마색이다. 보조색은 글자색과 마찬가지로 글자에 쓸 색인데, 색을 하나 더 쓰기 위한 색이다. 필자의 경우 그림에 관한 부가정보(장소,년도처럼 표기는 해줘야 하나 언급할 필요는 없는 정보)를 적을 때, 똑같이 검은색을 쓰면 난잡해 보이므로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회색을 많이 쓴다. 테마색은 PPT의 대표가 될 색인데 반드시 별도로 정할 필요는 없으며, 때때로 보조색/강조색이 대신하기도 한다.
예시로 들기 위한 스타벅스 매장 사진이다. 검은색이 글자색, 어두운 갈색이 보조색, 밝은 황토색이 바탕색, 초록색이 테마색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정작 테마색인 초록색은 별로 없다는 것에 주목하라. 스타벅스라서 그런게 아니라 원래 디자인은 그렇게 하는거다. 반드시 기억하자. 어딘가 이상한 디자인의 PPT를 살펴보면 배치, 폰트, 색 3가지 중 하나 이상이 나사가 풀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표는 절대 한 슬라이드로 설명하지 말 것.
발표자료를 만들다 보면 표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굳이 표가 아니더라도, 여러 사진을 한꺼번에 비교해서 설명해야 하는경우처럼 표의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다. 표를 한 슬라이드만으로 설명하겠다는 것은 최악의 판단이다. 청중은 표의 수많은 칸들 중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 지 모른다. 때문에 표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여러 슬라이드로 나눠서 각 슬라이드마다 설명하고자 하는 부분만을 조명해야 한다.
보통 발표할 때 아래처럼 표가 들어가있는 하나의 슬라이드만을 설명한다. 이럴때 관객은 발표자가 어디를 설명하는지 캐치하기 어려우며, 산만해지기 쉽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한 슬라이드만으로 표를 설명한다.
반면 같은 표를 발표하더라도 아래처럼 표의 전체 모습을 한번 보여준 후에, 조명하고자 하는 부분만 하이라이트를 줘서 나눠서 설명하는 편이 전달하기 편하다.
하지만 이렇게 표에서 다른 부분을 설명할때마다 해당 부분에 강조효과를 주면 어떨까?
필자는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공대 중의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신입생 때 첫 발표로 흑역사를 만들고 나서, 발표를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 모두의 것을 비교하며 4년간 열심히 고생한 끝에 깨달은 것들이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결국엔 3학년쯤 가서는 팀플 발표 1등도 종종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오래 안걸린다. 당신도 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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