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추천] 슬램덩크(SLAM DUNK) - 우리를 열광시킨 것은 덩크가 아닌 리바운드

나에게는 만화라는 매체에 있어서 고전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은 감상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장르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은 편이어서인지, 제아무리 극찬을 받는 작품이라도 소설이었다면 필독서 목록에 있을 만한 작품도 막상 보면 그저 그랬다. 만화라는 장르가 특히 최근 2,30년간 많은 변화를 겪어서 시대의 차이를 느끼기 쉽게 만들어서일 것이다.
특히 드래곤볼이 그런 경우였다. 일본 만화의 독보적인 히트작이었지만 내가 접한 시기는 2010년이었고 당시의 기준으로도 드래곤볼의 세계관과 서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80년대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걸작임을 알수 있었지만) 그러다 보니 명성이 자자한 만화엔 손이 잘 가지않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김이 새진 않을까 싶어 '언젠간 정주행해야지' 하는 리스트에 올려놓은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스파이 패밀리', '체인소 맨', '주술회전'같은 비교적 신참에 속하는 만화들을 읽고나니 완결까지 쭈욱 달릴 수 있는 만화가 보고싶어졌다. 그렇게 드디어 1권 표지를 넘기게 된 것이 '슬램덩크'다. 워낙에 유명한 탓에 인터넷에서 각종 패러디/합성짤로 접한데다 심지어는 결말도 얼추 들어서 알고 있었음에도 이번에는 달랐다. 완결까지 굉장히 몰입해서 봤는데, 정말 간만인것 같다.

욱일기 및 트레이싱 논란에 더해 작가의 극우논란이 있지만 굳이 여기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원래 어떤 사람이 한 분야에 뛰어나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중간 이상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이 자기 집 못찾아갔다는 일화도 유명하니까.(정말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선 만화 이야기를 할 것이니 만화 그자체만 생각하고 싶다.


슬램덩크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소년만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농구부에 가입하게 되고,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기술을 갈고닦아 전우애를 다져 팀 승리의 주역이 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라는 어찌보면 시작부터 결말도 대충 정해져 있는 그런 식이다.
여기에서 주인공인 북산고 1학년 강백호는 남들보다 큰 키, 그리고 좋은 점프력을 지녔다. 그러다 동급생 '채소연'에게 잘 보이기 위한 불순한 이유로 농구부에 들어가게 된다. 강백호가 재능이 있었던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강백호는 농구 초보자였는데, 룰도 아예 모른는 수준으로 아예 백지부터 시작하는 셈. 하지만 강백호의 재능을 알아본 농구부 감독 안선생님과 채치수의 지도로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유명했던, 자신과는 이미 수준차이가 상당히 나는 서태웅을 라이벌로 여기며 결국 '리바운드의 제왕'으로 많은 활약을 하게 된다.
슬램덩크는 내가 접한 첫 스포츠 만화이지만 다른 소년만화의 장르와 유사한 점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백호의 성장스토리에서 연상되는 만화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당장에 한때 '원나블'이라 불리며 00년대와 10년대 초반을 대표했던 블리치와 나루토가 그렇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점에서 좋은 혈통을 가진 주인공들과 겹치며(블리치의 이치고, 나루토의 나루토)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다. 그리고 거기엔 세계관 내에서 순위권에 드는 멘토가 있으며(블리치의 전 대장인 우라하라, 나루토의 전설의 삼닌 지라이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상황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었기에 제한적인 기술만으로 많은 난관을 돌파한다(강백호의 리바운드, 이치고의 월아천충, 나루토의 나선환).


명확한 목표가 제시되며 주인공의 성장이 필요하면서도 어느정도의 현실성은 갖추기 위해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누가 누구를 따라했고를 떠나 성장물을 구성하기에 가장 최적의 요소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고의 스포츠만화로 남게된 데에는 스포츠 그 자체에 집중했다는점이 크게 작용한것 같다. 슬램덩크를 정주행 하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스포츠 만화이기도 하지만 청춘학원물의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상당히 빗나갔다. 공통의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각 개인의 성장도 두드러지게 마련인데, 슬램덩크는 내 생각보다 '공통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송태섭, 정대만 등을 비롯한 각 개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팀에 재합류 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쓰이지, 그 이상으로 깊게 다뤄지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강백호만 해도 '농구선수'로써의 성장이 나타나고 있을 뿐, '인간 강백호'로써의 면모는 크게 조명되지 않는 느낌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점이 극의 전개를 산만하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농구 규칙이라고는 워킹, 3점 슛 정도밖에 모르는데에도 따라가기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흥미가 떨어지지는 않게 그 정도를 굉장히 잘 유지하고 있다.

산왕전 이후의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작가가 이후의 스토리를 제대로 구상하지 못해서 급전개를 내버렸다, 차기작을 염두했다 등등이 그것. 하지만 내 의견으로는 나름 반전이면서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최강이라 불리는 산왕공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으니, 실질적으로 북산은 최고의 팀이 되었음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였던 전국제패는 이뤄내지 못했는데, 이것이 북산의 남은 주역들에게 다시 한번 이루지 못한 목표가 되어 멈추지 않고 점점 성장해나갈 것임을 암시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 열심히 변호해 본다.
슬램덩크의 차기작이 종종 작가에게서 언급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다. 스포츠만화에 가장 어울리면서 반전도 챙겨간 적절한 결말로, 이대로 매듭지어진 채 그대로 두는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그보다 내가 아쉬운 점은 북산의 벤치멤버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권준호의 이야기도 더 보고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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