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기사단장 죽이기
0.5
☆
"나무야 미안해(...)"
무려 12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몇 가지의 사건들이 함께 엮여가며 진행된다. 사이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던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요구를 받은 주인공은 친구가 마련해준 집에서 지내게 된다. 주인공은 그 집의 다락에서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이름의 그림을 발견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느껴 작업실에 걸어둔다. 그리고 맞은편 건물에는 의문의 남자가 살고 있다. 그 남자는 주인공에게 거액의 보수를 약속하며 초상화를 그려주기를 의뢰한다. 주인공이 제법 잘 나가는 초상화가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은 이 남자가 현재 거주지에 살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자신의 친딸이라고 생각되는 여자아이가 주변에 살고 있던 것. 물론 아이의 친엄마가 되는 사람은 이미 정식 남편이 있으며, 작중 시점에는 사망한 뒤였다. 남자는 주인공에게 여자아이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부탁했다. 자신은 그 장소를 드나들며 마주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한편, 둘은 집의 뒷마당에서 일정 시각마다 방울소리를 듣게 된다. 이것에 의문을 품은 둘은 중장비를 동원해 뒷마당을 파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우물과 같은 구덩이가 있었고, 바닥엔 방울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미건조하기도 하고, 미스터리한 사건들 때문에 초반부터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일까, 결말은 그에 형편없었다는 것이 내 소감이다. 읽고 난 뒤, 차근차근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이야기가 끝에 다다르면서 여자아이의 초상화는 별 탈 없이 완성되었고, 이웃 남자는 여전히 잘 지내며,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은 다시 다락방으로 원래의 자리에 놓인다. 가장 기가차는 사실은, 주인공과 아내가 다시 합쳐 가정을 꾸리는 결말이다. 정말 뜬금없다. 그 세계 사람들은 생각이라는게 별로 없나보다. 그냥 웬지 그러고 싶다면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나 보다.
정작 재밌을 만한 소재인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어떠한 연유로 발생한 것인지, 마치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진행하는 듯한 이웃 남자의 '진짜속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조차 없다. 마치 무언가 있을 것처럼 허세는 부려놓고 끝에 가서는 아무 것도 없었던 척한다. 이런 줄거리에 1200페이지를 할당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야 미안해.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소설가 중,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가 특히 자주 꼽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대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과 대비되어서 그런가. 크게 실망스러웠다. 1200 페이지나 투자했는데.. 나무도 아까웠고 시간도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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